투구를 벗고 몸을 누이니 한결 편했다. 화랑으로 또 무관으로 사십평생 싸움터를 전전하며 지낸 영담이었건만 이토록 마음에 내키지 않는 출정은 처음이었다. 발해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 영담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한기는 사라졌지만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서해변에서 난동을 부리는 당의 잔적들을 찾아서, 또 동해변에 출몰하는 왜구와 초적들을 토벌하며 싸움터를 전전한 영담이 싸움이 두려워 잠을 못 이룰 리 없었다. 억지로 잠을 청하느니 차라리 적정을 살피는 것이 나올 듯해 영담은 다시 갑옷을 걸치고 군막을 나섰다.--- p.20
신라 조정에서도 거듭해서 국경을 위협하고 있는 발해에 대해 이번만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별고 한 출정인지라 아무래도 유야무야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여차했다가는 대규모로 반격할 예정이었고 고장성까지 밀고 들어가 성을 함락시킬 작정이었기에 보병과 기병, 그리고 장창당과 노당 외에도 운제당과 충당까지 동원된 터였다. 그렇게 되면 발해에서도 가만 있지 않을 것이고 큰 싸움으로 번지게 될 것은 불보듯 훤했다.
영담은 군졸들이 추위에 떨면서도 부지런히 병장기를 매만지는 것을 확인하고 군막으로 들어섰다. 대아찬 김영담, 신라군 대관대감으로 동북변에서 발해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비보를 접하고 정예 자금서당을 이끌고 밤을 새워 북변으로 달려온 길이었다. 얼마 안 있으면 경덕왕 14년(755)도 저물겠지만 북변은 전운이 깊어만 가고 있었다.---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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