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일상나들이/책향기

철도원 - 아사다 지로

윤주빠 2009. 3. 20. 15:02

철도원 

 

 

책소개

일본 문단에서 가장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손꼽히는 작가중의 하나인 아사다 지로의 소설집. 1997년 출간이후 140만 일본 독자를 슬픔과 감동에 젖게 한 작품 '철도원'을 비롯, '러브레터', '츠토하즈에서', '백중맞이'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제 117회 나오키상 수상작.

저자 소개

저 : 아사다 지로

Asada Jiro,あさだ じろう,淺田次郞 그윽한 감동의 소설 『철도원』으로 우리에게 친숙해진 소설가이다. 일본과 우리 나라에서 최고의 히트를 기록했던 영화 철도원을 통해서 아사다 지로라는 작가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사다 지로 소설의 특징은 아주 재미있다는 것이다. 소설이 이야기이고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원형적인 측면에서 재미를 준다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아사다 지로의 소설은 '재미있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한번 손에 잡고 되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아사다 지로의 소설에는 있다. 돌이켜 보면 1960년대 프랑스의 누보 로망 이후 소설가들이 자신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거리의 이야기꾼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거부해 왔다. 오히려 소설가들은 '글쓰기가 무엇인가', '소설의 운명은 무엇인가' 와 같은 심각한 주제를 가지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많은 형식적 실험들이 이루어 졌고 기존의 서사 구조를 파괴하는 기술 양식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소설이라는 문학 쟝르가 서구의 근대라는 특수한 시대와 가지는 관련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무성해졌다. 이러한 흐름을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 이후 많은 소설가들이 소설의 본질을 묻는 질문을 가지고 소설을 써오고 있다. 그것은 자기 의식에 대한 비서사적 묘사 등의 형태이거나 사소설 또는 다른 쟝르와의 결합 등의 형식적 실험의 모습을 가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소설은 더이상 서사 문학이기를 멈추었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들은 이러한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근대 이후 일본 소설의 주된 경향이 사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사다 지로의 소설들은 사소설적 양식에서도 벗어나 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손자에게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소설을 쓴다. 첫 소설이 자신의 야쿠자 시절 경험을 담은 소설이었던 것 처럼 아사다 지로는 자신의 평범치 않은 경험을 밑천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젊은 시절의 야쿠자 경험은 그의 소설 주위를 언제나 맴돌고 있다.

아사다 지로가 자신의 특이했던 젊은 시절만을 가지고 그것을 지루하게 재생하는 작가는 아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과거사가 배경이 되기도 하고

역 : 양윤옥

일본문학 전문번역가. 주요 저서로 『슬픈 李箱』 『그리운 여성 모습』 『글로 만나는 아이 세상』 등이 있으며, 주요 역서로는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 『장미도둑』,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 『달』, 오히라 미쓰요의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후쿠다 다케시의 『내 사람을 만드는 말·남의 사람을 만드는 말』, 히로 사치야의 『차나 한잔 들고 가시게』, 나카니시 레이의 『게이샤의 노래』, 야마모토 후미오의 『연애중독』 등이 있다. 2005년에 소설 『일식』으로 일본 고단샤(講談社)의 노마 문예번역상을 수상하였다.

목차

1. 철도원
2. 러브 레터
3. 악마
4. 츠노하즈에서
5. 캬라
6. 백중맞이
7.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
8. 오리온 좌에서 온 초대장

책속으로

화장실에서 나온 소녀에게 오토마츠는 품 속에서 데운 캔커피를 건네주었다. '너, 참 귀엽구나. 어머니가 상당한 미인이시겠어. 근데, 뉘 집 앨꼬?' '자, 반씩 나눠 먹어여.' '아저씨는 일없다. 내 걱정 말고 너나 마셔라.' 마을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오토마츠는 줄곧 지켜보왔다. 하나둘 도회지로 떠나버렸지만, 어떤 얼굴도 잊을 수 없었다. 남의 아이가 커가는 모습이었지만 그렇게 귀엽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기 피를 나눈 제 아이라면 어떠랴. 오토마츠는 생각하곤 했다.--- pp. 28-29


할아버지는 버선발이 늘 깨끗했다. 목욕탕에서는 남들이 꺼려하는 문신은 볼 테면 보란 듯이 서슴없이 내놓으면서, 전쟁터에서 얻은 왼쪽 어깨의 흉터에는 반드시 수건을 걸쳐 두었다. 그리고타일 바닥 우에 널찍하게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치에코의 발가락사이며 귀 뒤를 아플 정도로 뽀득뽀득 씻어 주었다.--- p.242pp.16-21


'이젠 됐어요, 고로 씨. 고마워요, 셰셰.'

발 밑에 홍자색 가지꽃이 한 송이 피어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니. 이러면 이제 함께 못 살잖니? 밥도 못 먹고 술도 못 마시고 안아주지도 못하잖니?'

꽃은 속삭이듯이 흔들렸다.

'고마워요, 고로 씨, 저 이제 괜찮아요. 손님들 다 친절했지만 고로씨가 제일 친절해요. 나하고 결혼해주었으니까요.'

고로는 꽃잎 위에 후두둑 눈물을 떨구었다.
--- p.57


'유키코....어제 저녁부터 차례차례 자라가는 모습을 이 아버지에게 보여준 게로구나. 저녁 참에는 책가방을 메고 아비 눈앞에서 차렷 해 보였지. 그리고 한밤중에는 좀더 자란 모습을, 그리고 이번에는 비요로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십칠 년간 성큼성큼 자라는 모습을 아비에게 보여준 게로구나......'--- p.44


'오토마츠, 잘 봐두시게. 나랑 자네랑, 이 고철하고 함께 가세.'

'진짜 눈물나게 하실 참이에요, 아저씨?'

기관사는 조수석에 선 채 콧물을 훌쩍였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는 철도원이다. 칙칙폭폭 푸우, 미련한 쇳소리를 내지르며 강철 팔뚝을 흔들며 꿋꿋이 달리는 철도원이다. 인간처럼 눈물따위는 흘릴수 없지, 암. 센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 p.48


십칠 년 전 눈 내리던 날 아침. 아내의 팔에 안긴 유키코를 저 홈에서 보냈다. 평소 하던 그대로 수신호를 하여 기차를 보냈다. 그리고 그날 밤 기차로 유키코는 싸여 갔던 모초에 말려 차디찬 몸이 되어 돌아왔다.

'당신, 죽은 아이까지 깃발 흔들며 맞이해야 되겠어요?'

아내는 눈 쌓인 홈에 쪼그리고 앉아 죽은 유키코를 꼭 끌어안고 그렇게 말했다. 그때 뭐라고 대답했던가.

'그래도 내 일이 철도원인데 어쩌겠어. 재가 홈에서 깃발을 흔들지 않으면 이렇게 눈이 쏟아지는데 누가 기하를 유도하겠어? 전철기도 돌려야 하고. 학교가 파한 아이들도 다들 돌아올텐데.'
--- p.27


손님들 모두 친절하지만, 일하면서 고로 씨 잊지 않습니다. 진짜입니다. 손님을 고로 씨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열심히 되어서 손님이 기뻐합니다. 고로 씨 태어난 곳, 바다 바로 옆이지요. 여기에 왔을 때 근처인가 하고 지도에서 찾았습니다. 너무나 멀어서 실망했습니다. 그러나 나와 똑같아요. 먼 곳에서 일하러 와 있는 고로 씨, 나와 똑같아요. 내가 죽으면 고로 씨 만나러 와줍니까.

만약 만나면 부탁 한 가지만. 나를 고로 씨 묘에 넣어주겠습니까. 고로 씨의 아내인 채로 죽어도 좋습니까. 무리하게 부탁해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고로 씨 덕분에 일 많이 했습니다. 고향 집에 돈 많이 부쳤습니다. 죽는 것 무섭지만 아프지만 괴롭지만 참습니다. 부탁 들어주세요.
--- pp. 84-85


기관사는 조수석에 선 채 콧물을 훌쩍였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는 철도원이다. 칙칙폭폭 뿌우, 미련한 쇳소리를 내지르며 강철 팔뚝을 흔들며 꿋꿋이 달리는 철도원이다. 인간처럼 눈물 따위는 흘릴 수 없지, 암. 센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p.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