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에 윤주랑 들렀었던 영양 주실마을 그리고 지훈문학관...
청록파 시인이자 지조론의 학자 조지훈 선생을 기리기 위해 2007년에 만들어진 곳인데
전시실과 시청각실이 갖춰져 있고 살아생전 조지훈 선생의 유품과 육성녹음테이프 그리고 시낭송테이프등이 있어서
조지훈 선생의 향기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는 곳이랍니다.
그리고 주실마을은 1629년에 호은 조전 선생이 들어와 살면서 형성된 마을로 380년 된 종택앞의 문필봉(文筆峯)의 기운때문에
인물배출의 진원지라는 풍수지리학적 학설이 있고 실제로 조지훈 선생의 집안에서는 박사 14명과
저명한 대학 교수들이 많이 배출된걸 보면 풍수지리학적으로 좋은 명당이긴 명당인가 봅니다.
그리고 주실마을에는 그 옛날부터 마을에 우물이 딱 하나뿐이었는데 그 이유는,
주실마을이 배 모양의 지형이어서 우물을 많이 파면 배 밑바닥에 구멍이 뚫리고 배가 침몰하게 되어
큰 인물이 안 나온다고 생각해서 하나의 우물만으로 마을 사람들이 식수를 해결했고
일제 강점기때도 창씨 개명을 거부하며 지조를 지켜서 선비의 마을로 지금까지 불리어지고 있는 주실마을.
지훈 박물관 내부 전시실입니다.
1920년에 태어나 한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1968년에 돌아가신 조지훈 선생.
[청록집] [풀잎단장] [조지훈시선] [역사 앞에서] [여운]등의 시집과 특히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읖조리고 있는
[승무] [낙화] [고사]와 같은 명시들을 지었고 조선어학회의 큰사전원고를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학문적 바탕이 깊어지게 된 조지훈 선생은
국사교본 편찬원이 되어 우리 손으로 된 최초의 국어교과서와 요즘 참 말썽 많은 국사교과서를 편찬하는 작업을 하였고
<조선문인보국회>라는 친일문학단체의 입회 강요에 "추천시 몇 편 발표한 것이 무슨 시인이겠느냐?"며
스스로 붓을 꺾고 입회를 거부한 일화는 참 유명하죠....
그후 광복과 함께 사회활동을 다시 전개하며 반탁운동과 민중운동 그리고 문화운동등을 하였고
중국문인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유당 독재정권을 논설과 참여시로 질타하는 일에도 앞장서며
그렇게 한 세상을 풍미하며 뜨겁게 살았던 조지훈 선생은 50세도 안된 1968년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어쩌면 항상 바른 말을 해서 권력층들에게는 참 미운 눈엣가시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요즘 같은 세상에 조지훈 선생같은 분이 계시면 국민들의 답답한 속이 좀 뚫릴텐데 ........
두꺼운 뿔테안경을 쓰고 책상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우시던 그분의 모습이 보이는것 같은 그의 유물관입니다..
아이들에겐 아름다운 시와 그때의 역사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좋은 시간이었겠죠??
여기는 지훈시공원 올라가는 길인데 올해는 수해때문에 출입통제를 해서 아쉽게도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네요...
이 곳은 조지훈 선생의 생가인 호은종택입니다.
조선 인조때 조정형이 지은 건물로 "ㅁ"자형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고 정침(正寢)과 대문채로 나누어져 있으며
집안의 체통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삼불차(三不借)라는 가훈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위에서 말했던 삼불차(三不借)라는 가훈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첫째는 재불차(財不借)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남에게서 재물을 빌리지 않았다고 하며 그 재물을 빌리지 않기 위한 수단이 종가 앞에 위치한 50마지기의 논인데
수백년 동안 이 50마지기는 누구도 함부로 팔거나 저당 잡힐 수 없는 불가침의 땅이었다고 합니다.
둘째는 문불차(文不借)로 선비 집안이 글을 못해서 다른 집안으로 글을 빌리러 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주실 조씨들은 어렸을 때부터 글공부에 매진하였고 비록 벼슬은 못해도 학문이 높으면 선비로 대접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셋째는 인불차(人不借)로 사람을 빌리지 않는다는 것이며 ‘양자를 들이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명문가에서는 아들이 없으면 양자를 들여 대를 잇는 것이 관례였지만 양자를 들이려면 상대방 집에 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간청을 해야만해서
양자 달라고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다고 하며 흥미롭게도 조지훈의 집안에서는 370년 동안 양자를 들이지 않고 혈손으로 대를 이어왔고
이 삼불차가 조지훈 선생의 ‘지조론’의 뿌리가 되었다고 하는데 어쩌면 영남지역의 보수성이 ‘삼불차’와 같은 남인가풍과도 관련 있는것 같습니다.
영양 주실마을 그리고 지훈문학관은 잘 둘러보셨나요??
이제 본격적인 휴가철이 다가와서 어디로 갈지 고민중이실텐데 시끌벅적한 휴양지나 관광지도 좋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떠나보는 지훈문학관 같은 곳으로의 여행도 어쩌면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2012년 여름...
기저귀 차고 엄마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꼬꼬마 윤주가......
어느새 이렇게 훌쩍 컸네요...
손에 있는 애기박쥐는 내가 잡아준건데 아직 어려서 그런지 윤주손위에서 바둥바둥 거리며 날아갈려고 하지 않아서
어떻게해야하나하고 윤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답니다...
그래서 밖에 있는 나무에 올려주자 그 조그만 발로 나무를 붙잡고 올라가더니 어두운 곳으로 쏙 들어가서 집으로 오는데
윤주가 계속 "아빠...애기 박쥐 잘 있겠지?"이러며 또 걱정을 했다는.....ㅎㅎ
'윤주랑 떠나는 세상 풍경 > 경상도 둘러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양 주실마을..날빛 푸르른 날에 조지훈 선생 흔적을 좇아 세번째 방문하다.. (0) | 2018.10.15 |
---|---|
안동 그리고 이육사 시인의 흔적을 찾아서... (0) | 2018.01.04 |
포항의 명물로 발전하고 있는 독도빵을 아시나요?? (0) | 2017.12.04 |
안동 소주.....1,300년의 시간을 맛보다.... (0) | 2017.08.04 |
윤주네 휴가이야기 마지막 - 조지훈 생가 방문기.. (0) | 2012.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