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일상나들이/책향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이문열

윤주빠 2009. 3. 20. 12:43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책소개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수록되어 화제가 된 이문열의 작품. 권력의 형성과 몰락 과정을 초등 학교 교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형상화했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와 가하는 아이의 심리, 불의에 저항해 보지만 무관심한 선생님, 당하는 아이가 처절한 굴종과 패배감을 안고 어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저자 소개

작가파일보기 저 : 이문열

李文烈 1948년 경북 영양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수학.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으로 등단. 장편소설 『젊은날의 초상』『영웅시대』『시인』『오디세이아 서울』『황제를 위하여』『선택』등 다수가 있고, 중단편소설로 『이문열 중단편 전집』(전5권), 산문집 『사색』『시대와의 불화』, 대하소설 『변경』『대륙의 한』이 있으며, 평역소설로 『삼국지』『수호지』를 선보였다. <오늘의 작가상><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다.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고등학교 중퇴 후 검정고시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 다시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등의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온 그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대구매일신문]에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가작으로 뽑힐 때까지 이문열은 많은 좌절을 경험한다.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서울대 사범대까지 모두 중도에 포기했으며, 신춘문예, 사법고시 등에서 연이어 실패를 맛 보았다. 77년에 등단하고 이듬해 [사람의 아들]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94년 학문 연구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교수제의를 받아들여 세종대 강단에 섰으나 3년만에 개인적인 이상실현의 문제와 작가로서 충분히 작품 세계를 이룩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지는 것을 우려, '창작전념'을 위함이라며 교수직을 사임했다.

현재는 조각가 친구의 권유로 경기도 이천에 땅을 구입하여 작업실을 마련했고, 그곳에 인문학적 교양을 쌓고 깊은 학문 연구를 할 수 있는 조그만 자리를 젊은 친구들에게 마련해주고자 뒷동산 부아악負兒岳이라는 산 이름을 따와 <부악문원>을 설립하여 새로운 지식의 샘을 젊은 학도들과 함께 탐구하려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2000년 5월 이문열의 책 판매량이 2천만 권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가운데 삼국지, 수호지 평역을 제외한 순수 창작물의 판매량이 천만 권 이상이라니, 한국인 4명에 한 명은 그의 소설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각종 문학상 수상작품집 등을 따지면 그의 글을 집에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인은 없다고 해도 무리한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업적 성공은 이문열을 이해하는 단서 가운데 작은 하나일 뿐이다.

이문열의 작품 세계엔 그의 경험이 고스란이 담겨 있다. 월북한 아버지로 인한 좌절, 전통적인 가풍의 집안은 그의 경험이며, 동시에 그의 소설에서 쉽사리 읽어낼 수 있는 특징이다.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금시조>, <선택> 등의 책은 이런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의 경험이 한국 현대가 겪고 있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가 거듭 묻는 질문, 전통과 현대의 문제, 분단 상황의 문제 등은 바로 그의 경험에서 나온 것들이며 한국사회가 피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이 질문들에 대한 이문열의 대답은 보수적이고 전통지향적인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수구주의나 남성우월주의로 비판받기도 했다. <선택>을 둘러싼 논쟁이나, 총선연대 활동이나, 언론개혁을 둘러싼 논쟁이 그것이다. 이문열이 자신의 소설에 담고 있는 주장이 무엇이든 그가 소설을 통해, 또는 소설 속에서 던지는 질문이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바로 그 문제라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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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벌써 삼십 년이 다 돼 가지만, 그해 봄에서 가을까지의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해진다. 어쩌면 그런 싸움이야말로 우리 살이[生]가 흔히 빠지게 되는 어떤 상태이고, 그래서 실은 아직도 내가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받게 되는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당 정권이 아직은 그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던 그해 삼 월중순, 나는 그때껏 자랑스레 다니던 서울의 명문 국민학교를 떠나 한 작은 읍(邑)의 별로 볼것없는 국민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공무원이었다가 바람을 맞아 거기까지 날려간 아버지를 따라 가족 모두가 이사를 가게 된 까닭이었는, 그때 나는 열두 살에 갓 올라간 5학년이었다.
--- p.3


'다섯 놈이 하나한테 하루 종일 끌려다녀? 병신 같은 자식들.'

'너희들은 두 손 묶어 놓고 있었어? 멍청한 놈들.'

그렇게 소리치며 마구 매질을 해 댈 때에는 마치 사람이 갑자기 변한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영문을 몰랐으나, 그 효과는 오래지 않아 나타났다. 우리 중에서는 좀 별나고 소진 거리 아이들 다섯 명이 마침내 석대와 맞붙은 일이 벌어졌다. 석대는 전에 없이 사납게 굴었지만, 상대편 아이들도 이판사판으로 덤비자, 결국은 혼자서 다섯을 당해 내지 못하고 꽁무니를 뺐다. 선생님은 그 아이들에세 그 당시 한창 인기 있던 케네디 대통령의 '용기 있는 사람들'이란 책 한 권씩을 나눠 주며, 우리 모두가 부러워할만큼 여럿 앞에서 그들을 치켜 세웠다. 그러자 다음 날, 미창 쪽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고, 그 뒤 석대는 두 번 다시 아이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 pp.131-132


그 바람에 나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도 잊고 박원하가 하는 짓을 유심히 살폈다. 그 애는 힐끔힐끔 시험 감독을 나온 다른 반 담임을 훔쳐보며 방금 말끔히 지운 곳에 얼른 이름을 써 넣었는데, 놀랍게도 그 이름은 엄석대의 것이었다. 이름을 다 써 넣고서야 겨우 여유를 찾은 그 애가 사방을 슬그머니 돌아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찔끔했다.--- p.93


거기다가 그런 내 첫인상을 더욱 굳혀 준 것은 교무실이었다. 내가 그때껏 다녔던 학교의 교무실은 서울에서도 손꼽는 학교답게 넓고 번들거렸고, 거기 있는 선생님들도 한결같이 깔끔하고 활기에 찬 이들이었다. 그런데 겨울 교실 하나 넓이의 그 교무실에는 시골 아저씨들처럼 후줄그레한 선생님들이 맥없이 앉아 굴뚝같이 담배 연기만 뿜어 대고 있는 것이었다. 나를 데리고 교무실로 들어서는 어머니를 알아보고 다가오는 담임 선생님도 내 기대와는 너무도 멀었다.

아름답고 상냥한 여선생님까지는 못 돼도 부드럽고 자상한 멋쟁이 선생님쯤은 될 줄 았았는데, 막걸리 방울이 튀어 하얗게 말라붙은 양복 윗도리 소매부터가 아니었다. 머리 기름은커녕 빗질도 안해 부스스한 머리에 그날 아침 세수를 했는지가 정말로 의심스런 얼굴로 어머님의 말씀을 듣는둥 마는둥 하고 있는 그가 담임 선생이 된다는게 솔직히 그렇게 실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 뒤 일 년에 걸친 악연(惡緣)이 그때 벌써 어떤 예감으로 와 닿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악연은 잠시 뒤 나를 반아이들에게 소개할 때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 전학온 한병태다. 앞으로 잘 지내도록.」
--- 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