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 - 천상병
해외의 많은 문학 독자들이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된 ''한국문학 영역 총서' 천상병시인 편. 1971 발표한 '새' 부터 1987~1993 발표한 '요놈 요놈 요 이쁜 놈!'까지 시인의 작품 84편을 영역과 함께 수록하였다. 이 총서를 통해 언어가 어떻게 문학적으로 신비롭게 또 절묘하게 쓰이는 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1. 새 Bird (1971)
2. 주막에서 In a tavern (1978)
3. 천상 시인 A Real Poet (1984)
4.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You lovely fellow, you! (1987~1993)
천상병 시인은 1993년 4월 28일 세상을 떴는데, 그것은 오래 전에 예행 연습이 끝난 죽음이었다. 그가 처음 세상을 떠난 것은 1967년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서울 중심부에 있는 그들의 본부인 그 무시무시한 지하실로 그를 끌고 갔을 때였다. 간첩 혐의로 기소된 대학 시절 친구의 수첩에서 그의 이름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천상병은 여섯 달을 갇혀 있다가 풀려났다. 자백을 강요받았으나 친구가 여럿 있다는 사실 말고는 자백할 것이 없었다. 이 때의 전기 고문으로 그는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1930년 일본 땅에서 태어난 그는 해방되던 해 가족을 따라 귀국하여 마산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그가 아직 학생이던 1949년 월간 잡지 에 그의 첫 작품 "강물"이 발표되었다. 서울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1952년 경에는 이미 추천이 완료되어 그는 기성 시인 대접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잠시 부산에서 일을 했는데, 시를 쓰는 한편으로 문학평론을 여러 잡지에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평론 활동도 그의 작가로서의 생활에 중요한 일부분을 이룬다.
고문을 받은 사건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천상병은 또 한 번 "죽음"을 맞게 된다. 고문의 깊...천상병 시인은 1993년 4월 28일 세상을 떴는데, 그것은 오래 전에 예행 연습이 끝난 죽음이었다. 그가 처음 세상을 떠난 것은 1967년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서울 중심부에 있는 그들의 본부인 그 무시무시한 지하실로 그를 끌고 갔을 때였다. 간첩 혐의로 기소된 대학 시절 친구의 수첩에서 그의 이름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천상병은 여섯 달을 갇혀 있다가 풀려났다. 자백을 강요받았으나 친구가 여럿 있다는 사실 말고는 자백할 것이 없었다. 이 때의 전기 고문으로 그는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1930년 일본 땅에서 태어난 그는 해방되던 해 가족을 따라 귀국하여 마산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그가 아직 학생이던 1949년 월간 잡지 <문예>에 그의 첫 작품 "강물"이 발표되었다. 서울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1952년 경에는 이미 추천이 완료되어 그는 기성 시인 대접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잠시 부산에서 일을 했는데, 시를 쓰는 한편으로 문학평론을 여러 잡지에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평론 활동도 그의 작가로서의 생활에 중요한 일부분을 이룬다.
고문을 받은 사건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천상병은 또 한 번 "죽음"을 맞게 된다. 고문의 깊은 후유증에 시달리며 술타령으로 나날을 떠돌던 그가 마침내 1971년 실종된 것이다. 친구와 친척들은 여러 달 동안 백방으로 그를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행려병자로 사망하여 아무도 모르는 어디엔가에 파묻힌 것으로 결론을 내린 그들은, 비통한 심정으로 그의 작품들을 모아 유고 시집을 발간했다.
여러 차례의 죽음으로 점철된 것이 천상병의 생애라면, 그의 삶은 또한 여러 겹의 부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가 살아 있다는, 서울의 청량리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느닷없는 소식이 왔다. 그는 거리에서 쓰러져 그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그 때 그는 자신의 이름과 자신이 시인이라는 사실 말고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심한 자폐증상을 보이는 가운데서도 대학 때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의 방문을 받은 뒤로는 그의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의사는 그녀에게 자주 찾아오는 것이 도움이 되며 모든 것이 잘 되면 한두 달 뒤에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천상병과 목순옥은 1972년 결혼을 하게 되고, 이들의 결혼생활은 때로는 심한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며 20년간 계속된다.
친구들을 좋아하고 그냥 아무나 믿으며 술과 담배를 즐기는 그의 성품으로는 이 신혼부부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목순옥은 서울 인사동 골목에 작은 찻집을 열었고, 예술인, 작가, 언론인, 지식인들이 단골 손님이 되었다. 천상병 시인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의 제목을 따서 이 찻집의 옥호를 귀천이라 불렀다.
술에 곯은 시인의 간장이 성할 리가 없었다. 1988년 목순옥은 의사로부터 남편의 시련이 막바지에 이르렀으며 결코 회복할 가망이 없으니 임종에 대비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춘천에서 개업하고 있는 의사인 친구가 그들을 돕기로 했고 목순옥은 그 뒤 여러 달 동안 버스를 타고 춘천까지 달려가 매일 저녁을 그와 함께 보냈다. 그녀는 매일 춘천에서 돌아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하느님! 아직은 안됩니다. 그에게 오 년만 더 주십시오. 제발 빕니다. 오 년마 더요."하고 기도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는 원기를 되찾았고 그 뒤 퇴원하여 그럭저럭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 년 동안이었다. 이 유예기간 중에 그의 새로운 시집들과 에세이 집들이 출간되었고 1993년 4월 28일 그는 마지막 귀천 길에 올랐다. 천상병은 되살아나서 자신의 유고 시집의 출판을 목격하는 진귀한 특권을 누렸으며,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의 첫 유고 시집 이후에 몇 권의 시집을 더 출판할 수 있었다. 그의 두 번째 유고 시집, 이번에는 진짜인 유고 시집이 간행된 것은 1993년이었다.
--- 머리말 중에서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찾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p.48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I'll go back to heaven again.
Hand in hand with the dew
that melts at a touch of the dawning day,
I'll go back to heaven again.
With the dusk, together, just we two,
at a sign from a cloud after playing on the slopes
I'll go back to heaven again.
At the ednd of my outing to this beautiful world
I'll go back and say: It was beautiful...
--- pp.70-71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빌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p.70